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헬름 1세 (문단 편집) == 여담 == * 자유주의자, 아나키스트들에게 암살 위협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. 1878년에는 2번이나 암살 시도를 당했으며 특히 6월 2일 카를 노빌링의 암살 기도로 인해 크게 다치기도 했다. 다행히 [[알렉산드르 2세|조카]]처럼 암살당하지는 않았다. * [[프리메이슨]]의 회원이였다. * 33세 때 14살 연하인 [[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]][* [[파벨 1세]]의 외손녀(파벨 1세의 3녀 [[마리야 파블로브나 로마노바(1786)|마리야 파블로브나]]의 딸)이기도 하다.]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었다.[* 역대 프로이센 국왕 중에서 (첫) 배우자와의 나이 차이가 가장 많다. 초대 국왕 프리드리히 1세는 마지막 부인과 '''28살''' 차이였지만 이건 3번째 결혼이라...참고로 아들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3세]]와 [[빅토리아 애들레이드 메리 루이자|빅토리아]] 황후는 10살 차이였고, 손자 [[빌헬름 2세]]와 [[아우구스테 빅토리아]] 황후는 1살([[연상연하]] 커플) 차이.] 결혼이 늦은 건 자신의 육촌인 폴란드 귀족 출신[[https://en.wikipedia.org/wiki/Elisa_Radziwill|엘리자 라자비우]]과 결혼하고 싶어했는데 [[귀천상혼|신분이 떨어진다는 이유로]] 아버지 [[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]]가 반대하여 무산되었기 때문이다. 알다시피 [[폴란드 분할|폴란드는 망해서 나라가 없어졌]]기는 한데 프로이센은 다름 아닌 [[적반하장|그 분할의 당사자이자 그 분할된 영토를 차지한 수혜자인데...]][*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아무리 엘리자가 귀족이라도 엘리자의 가문이 폴란드의 왕족(통치가문)이 아니라 평범한 귀족이었기 때문이다. 독일계, 러시아계의 귀천상혼은 통치가문-일반귀족-평민으로 급이 나뉘어있다. 아무리 망국이거나 다소 불편한 관계에 있는 집안이어도 좀 신분이 더 높은 귀족이거나 왕족이었다면 당대 기준으로도 혼사를 받아줬을 것이다.] * 첫째 여동생 [[프로이센의 샤를로테|샤를로테 황후]]와는 사이가 꽤 좋았는지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다고 한다. 그 중에는 아내 아우구스타에 대한 불평을 적은 편지도 있다고 한다.(...) * 손주들 중에서 장손 [[빌헬름 2세]], 둘째 [[빅토리아 엘리자베트 아우구스테 샤를로테|샤를로테]], 셋째 [[하인리히 폰 프로이센|하인리히 왕자]]는 예뻐했지만 뒤에 태어난 세 손녀들([[프로이센의 빅토리아|빅토리아]], [[프로이센의 조피|조피]], [[마르가레테 폰 프로이센|마르가레테]])는 찬밥 취급했다. 이 손녀들은 어머니 [[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]], 외가인 [[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|영국 왕실]]과 더 가까웠다. * 장손 [[빌헬름 2세]]가 [[아들]]만 줄줄이 낳아서(슬하 6남 1녀) 빌헬름 2세의 4남인 [[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프로이센]]이 태어나는 것까지 보았다. 5남인 [[오스카 폰 프로이센]]은 1888년생이지만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3세 사후에 태어났다. 아우구스타 황후는 오스카가 태어나는 것까지 보고 갔으며, 빌헬름 2세의 6남인 [[요아힘 폰 프로이센]]과 막내인 [[빅토리아 루이제 폰 프로이센|빅토리아 루이제]]는 빌헬름 1세, 프리드리히 3세, 아우구스타 사후에 태어났다. [[파일:빌헬름 1세 동상.jpg]] * 빌헬름 2세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독일 통일을 빌헬름 1세의 업적이라며 전국 각지에 동상을 세우고 대제(大帝, Der Große) 칭호로 높혔으나, [[독일인]]들은 다 [[오토 폰 비스마르크|누구]]의 공적인지 잘 알고 있어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. 여담으로 오늘날 독일에서 프로이센 군주 중에 Der Große(大) 칭호를 사회 전체적으로 인정받은 사람은[* 즉 한국의 광개토'대'왕과 세종'대'왕 처럼.] 대[[선제후]](大選帝侯[* 대선-제후가 아니라 대-선제후(황제를 선출하는 제후)로 끊어야 하므로 [[選]][[帝]][[侯]]라고 표기한다.]) [[프리드리히 빌헬름]]과 [[프리드리히 대왕]]뿐이다. 물론 독일 통일과 독일 제국 건국의 상징적 존재 중 하나로서 칭송받는 군주인것도 맞다. * 비슷한 시기에 건국된 [[일본 제국]]과 비교하면 빌헬름 1세는 [[메이지 천황]]처럼 상징적인 군주, 비스마르크는 [[오쿠보 도시미치]]나 [[이토 히로부미]]처럼 통일 및 근대화의 주역이라고 볼 수 있다. * 현재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직계인 빌헬름 1세의 자손들은 [[빌헬름 2세]]의 자손들로만 이어진다. 빌헬름 1세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고, 아들 프리드리히 3세는 슬하에 4남 4녀를 두었지만 차남 [[하인리히 폰 프로이센]] 왕자의 가계는 손자대에서 끊어졌고, 삼남 지기스문트와 사남 발데마르는 요절했다.[* 그 외 첫째 손녀인 샤를로테의 외동딸도 자녀가 없어서 단절, 둘째 손녀 빅토리아는 자녀 없이 사망했다.] 반면 장손인 빌헬름 1세는 슬하에 6남 1녀를 두었고, 장증손인 [[빌헬름 폰 프로이센]] 황태자 슬하에 4남 2녀, 다음 후계자인 루이스 페르디난트가 4남 3녀를 두었고, 현재 당주인 게오르크가 슬하에 3남 1녀를 두었다. 직계인 당주들이 다른 왕가의 당주들이나 현 왕가의 왕자들보다 아들을 더 많이 두었다. * 여담으로 빌헬름 1세부터 현 당주 [[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]] 왕자까지 [[호엔촐레른 가문]]의 당주들은 번갈아면서 장수, 단명했다. * 빌헬름 1세 본인 - 90세까지 장수. * 아들 [[프리드리히 3세(독일 제국)|프리드리히 3세]] - 57세에 후두암으로 사망. * 손자 [[빌헬름 2세]] - 82세까지 장수. * 증손자 [[빌헬름 폰 프로이센]] 독일 황태자 - 69세에 심장마비로 사망. * 현손자 [[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]] 왕자 - 86세까지 장수. * 6대손 루이 페르디난트 주니어 - 군 훈련 도중 사고로 33세에 요절. * 7대손 [[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]] - 현재 당주 현재 나이 47세. [각주] [[분류:1797년 출생]][[분류:1888년 사망]][[분류:독일 황제]][[분류:프로이센 국왕]][[분류:호엔촐레른 가문]][[분류:베를린 출신 인물]][[분류:샤를로텐부르크 성 안장자]][[분류:가터 훈장]][[분류:레지옹 도뇌르 훈장/그랑크루아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